『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은 필리프 들레름이 프랑스에서 반복되는 생활 속 소소한 기쁨의 순간을 담은 에세이다. 1997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어 51주간 종합 베스트 순위 1위를 차지한 책으로, 개인의 경험을 담은 글이 이렇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문장에 공감하는 프랑스인들이 많았다는 의미일 테다. 책에는 프랑스인이라면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에피소드들을 담은 문장으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비프랑스인인 한국인 독자가 이 책을 접한다면 어떨까. 비행기로 12시간 넘게 떨어진 곳에 사는 이들이, 어쩌면 한 번도 프랑스 땅을 밟아본 적 없는 이들이 프랑스에서 거의 30년 전 쓰인 글에 이토록 위안을 받는 까닭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위안은 같은 나라의 삶을 공유하는 자들이 느끼는 소소한 행복감과 안온함과는 또 다른 결의 감정임이 분명하다.
외국 작가의 전시회를 감상할 때 쉽사리 느낄 수 있는 기분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림으로 예를 들면, 화가의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은 그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다. 갈기를 나부끼며 해변을 달리는 말들, 부두를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요트. 여행에서나 스쳤을 법한 혹은 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새롭고 이질적인 풍경이 누군가에겐 일상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훌쩍 다가오는 순간이다.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속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필리프 들레름의 일상이 여행처럼 영화처럼 쏟아져 들어온다. 그가 흔드는 스노글로브 속에는 ‘늘 비슷비슷한 것’들이 들어 있다. 소용돌이치는 눈송이가 감싸는 에펠탑, 몽생미셸은 그에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늘 비슷비슷한 것‘이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저런 걸 매일 보고 살았다면 내 삶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을까 하는, 경외심과 약간의 질투가 섞인 실없는 생각들을 하면서 작품을 감상하던 전시장에서의 누군가가 그려진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다른 세계가 나를 흔드는 경험이라고 하기엔, 필리프 들레름의 문장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함께 따라온다.
크루아상은 아니더라도 어슴푸레한 아침 졸린 눈을 비벼가며 따끈따끈한 식빵을 사러 가던 어느 주말 아침. 완두콩 깍지는 아니더라도 식탁에 앉아 세월아 네월아 시금치를 다듬던 식사 준비 시간, 에스파드리유는 아니더라도 아스팔트에 운동화 밑창이 쩍쩍 달라붙었던 더운 여름. 섬세하게 다듬어진 문장 하나하나가 잊힌 줄 알았으나 머릿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던 언젠가의 평범한 일상을 떠오르게 한다. 새로움과 익숙함이 함께하는 프랑스인의 글은 일상이 여행인 듯 혹은 그 반대인 듯 삶에 지친 외국인에게 또 하루를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