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샷 뒤의 여자들』은 인생샷 문화와 페미니즘 리부트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청년 여성들을 만나고, 상반되게 들리는 두 가지의 문화가 어떻게 동일한 인물들 내면에서 충돌하고 실천되고 있는지 돌아보는 책이다. 책은 1990년대 후반의 하두리부터, 2020년대의 인스타그램까지 대한민국 셀카 문화의 발전사를 톺아보며 시작한다. 시대별로 셀카의 구도와 유행이, 그리고 우리가 셀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변화해 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기존 사회학 비평에서 다뤄오던 '셀카=요즘 애들의 관종*짓'이라는 필터를 벗겨내고, 현대 여성의 또래 문화로서 셀카를 재발견한다.
그렇다면 ‘인생샷’은 2023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맞닥뜨리는 셀카의 최종 진화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셀카를 찍는 여성들은 인스타그램에 올릴 인생샷을 찾아 헤매고, 이를 위해 고민하며, 치열하게 공모한다. 각자 나름의 이유로 인스타그램에 예쁜 사진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한편으로 현타**를 맞아가면서도 이것이 ‘자연스러워’ 보이기 위해 한층 더 노력한다. 저자가 만난 인터뷰이들은 모두가 다른 상황과 배경 속에서 단 한 가지로 수렴되는 이유를 털어놓는다 : 그들이 기대하는 관객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저자의 논의는 여기에서 확장된다. 그렇다면 인생샷을 찍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보이고 싶어 하는가? 우리는 어떤 여자가, 어떻게 보이는 여자가 되고 싶었던 걸까?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탈코*** 셀럽’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 질문에 대한 힌트가 된다. 저자는 “인생샷을 찍는 여자들”과 그들을 추동하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매체의 힘이 “인생샷을 비난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음을 발견한다. 전시되는 이미지는 관객을 전제하고, 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셀카 속의 여성들이 자유로워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 입체적이고 유동적인 삶의 양상과 달리 이미지는 언제나 고정되어 있다. 그러한 모순 속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모두 다른 논리를 갖고서도 같은 사람이 되고, 가부장제라는 연극 속에서 착취당하는 배역을 동시에 맡은 여자들이 된다. 이처럼 ‘인생샷’과 ‘탈코 인증 사진’ 사이의 동일한 모순을 발견하는 저자의 작업은 인스타그램이라는 디지털 공간이 우리가 사는 가부장제 세계와 얼마나 닮아 있는지 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여성으로서 어떻게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것이 과연 가능하긴 할까.
저자의 결론은 다소 모호하게도 “갈팡질팡 평생 여러 세계 사이를 헤매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호한 답안은 저자의 당사자성과 연결된 깊은 고민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이 복잡한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와닿는 결론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닮고 싶고 되고 싶은 상이 있다. 인스타그램은 그것을 전시하기 아주 좋은 공간이자 그로써 나의 새로운 자아를 탐색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충돌은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에 비해 사실 당연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이를 어떻게 잘 참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 또한 그러한 타인들의 또 다른 현실이라고. 어떠한 한계가 있든 우리는 그러한 동지들과 함께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고. 우리가 셀카를 찍을 때 달라붙는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어쩌면 정말 같은 외로움을 가진 여자들을 그처럼 받아들이는 데에 있을지도 모른다.
*관심종자
**현실자각타임. 특정한 일을 저지른 뒤에 허탈감, 공허함 등이 찾아오는 시간을 일컫는다.
***탈코르셋 운동. 여성의 전유물로 일컬어지던 ‘꾸밈’에서 벗어나기 위해 긴 머리, 메이크업 등을 탈피하는 페미니즘 운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