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현'님의 서평을 보내드립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 묻는 평범한 안부에도 지쳐 버릴 때가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미래는 불투명하고 막막하기만 하죠. 이런 시기일수록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는 일은 어렵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무엇이든’ 해내는 과정 자체에 마음을 담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 먹고 자고 입는 사소한 일과에 집중할 때 마주하는 즐거움 역시 계획에 없이 찾아오는 법이니까요.
『잘돼가? 무엇이든』은 영화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를 만든 이경미 감독의 첫 에세이다. 이경미 감독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작품으로 만든 단편영화에서 제목을 따온 이 책에는 개성 있는 캐릭터와 독창적인 연출로 시선을 끄는 그의 영화만큼이나 매력적인 일상의 이야기들이 담겼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이경미 감독은 가족과 나눈 평범한 대화, 영화 제작에 관한 단상, 십여 년간 기록한 짧은 메모들로 무심한 듯 솔직하게 자신만의 시선을 보여 준다. 그 안에는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웃음으로 딛고 일어서는 우리의 삶이 있다.
이경미 감독은 지루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홧김에 낸 원서가 합격해 영화학교에 입학했다. 평소 영화감독을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안정적인 사회적 패턴을 따라 살아가면서도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의미 없는 반복에 스트레스는 쌓여만 갔다.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선택했지만 감독 입봉을 준비하는 것 역시 어두운 터널을 걷는 일이었다. 어디서부터가 실패인지도 스스로 정해야 했다. ‘희망 한 조각도 없이 그저 살아야 되니까 살던 그 시절’의 자신에게 안부를 묻는 마음으로 졸업 작품을 만들었다. 이경미 감독이 만든 영화의 힘은 완벽하지 않은 인물들이 자아내는 감정의 깊이에 있다. 그는 과거의 주변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려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려고, 두려움을 실체로 표현해 내려고 영화를 만든다. 가장 개인적인 감정으로부터 만들어진 영화 속 장면들은 그만큼 내밀하고 진솔한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영화판에 발을 들이고 「미쓰 홍당무」로 데뷔한 뒤 8년의 공백 끝에 「비밀은 없다」를 만들기까지 이경미 감독은 무수한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지만, 그의 시간들이 언제나 우울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스크립터 시절 박찬욱 감독이 찾던 ‘밧데리’를 ‘박 대리’로 오해해 충무로의 전설적인 일화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어머니의 다소 엉뚱한 애정에 따라 온몸에 잔뜩 꽃게랑 모양의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다. 백인 남편 필수(가명)와의 시시콜콜한 대화가 주는 재미도 있다. 두려운 현실 앞에서도 꿋꿋이 걸어 나가는 이경미 감독의 걸음에서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강인한 태도가 전해진다. 이따금 쪽팔리고 한심하게 느껴지는 나에게도 구석구석 살펴보면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꾸밈없이 써 내려간 글을 읽으며 그가 건네는 ‘철없고 부실한 농담들’에 따라 웃는 동안 조금은 행복해질지도 모른다.